한국에 와서 고생이 많은 마이클샌델
2021.03.
얼마 전부터 '공정하다는 착각' 류의 담론이 국내에 널리 퍼졌습니다. 저 책은 능력에 따른 보상 체계가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정착한 미국을 대상으로 하며, 능력주의적이라고 해서 마냥 공정하지는 못하다고 꼬집습니다. 우선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능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출발선부터가 다르거니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재능이라는 요소부터가 우연적으로 발생하지요. 이에 더해, 사실 노력도 유전자에 쓰여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파고들어가면 결정론적 회의주의에 도달합니다. 결정론을 마냥 긍정해버리면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이데올로기 자체가 유지하기 힘들어지는데다, 현재로선 답 없는 주제일 뿐이니 이런 비생산적인 논의는 지양하겠습니다.
저 책에서 샌델의 결론은 다소 맥빠지게 합니다. 사회를 선도하는 엘리트의 능력은 사실 우연의 산실에 가까우므로, 엘리트가 '겸손하고 사회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샌델의 미완된 결론입니다. 미국 엘리트들 하는 짓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으면 겸손해라 운운하는지가 참 재밌네요. 하지만 저는 이런 도덕이 자리잡아 엘리트가 선의를 가지기만 해도 사회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사회는 개개인의 선의와 도덕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각종 미담이나 부자의 기부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미국은 그토록 자유주의적이면서도 기부를 많이 하는 나라이고요(물론 기부하면 세제혜택/투자기회 등 콩고물도 떨어진다고 하지만). 단적인 예로, 똑같은 사회시스템이더라도 범죄자들만 모아놓은 사회가 이럭저럭 굴러가긴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보고, 시스템이 관할하지 못하는 애매한 부분을 인류애와 도덕이 채워준다 생각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저런 류의 비판을 한국사회에 투영하여 자신의 어설픈 논지의 뒷배로 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능력주의 비판은 저 책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존재하던 유서깊은 담론이고, 최근에는 주로 미국 진보(민주당) 엘리트를 비판하는 데 쓰여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최근에야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뒤틀린 아류작의 형태로 넘어온 건, 19년 9월 조국사태 및 20년 7월 인천국제공항 & 공공의대 사건과 시기적으로 겹칩니다. 마이클 샌델 책은 작년 말에야 나왔지만, 그 이전에도 19년 말의 meritocracy trap 등이 국내 좌파들에 의해 유독 띄워졌지요.
촛불과 탄핵이라는 준-혁명과 방역을 등에 업은 민주당은 지난 몇번의 선거에서 천하통일 비슷하게 하고 있었는데, 공정성 담론이라는 강력한 신념형 정적을 맞닥뜨리게 되었지요. 경력단절의 주 원인은 출산/육아인데다 출산율이 바닥치는 상황에서도, 워킹맘을 pinpoint하지 않고 수도권 여성 전체집단에게 콩고물을 던져주고, 각종 할당제를 통해 초기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 표심을 얻으며 콘크리트를 공고히 하고 있었지요. 그런 그들에게 "이 모든 게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정의롭지 못하다."라는 프레임이 씌이게 되었습니다. 진중권 교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민주당이 자초한 치명적 버그라고 일컬었는데, 제가 보기엔 야당 시절에 그토록 부르짖던 공정사회 구호 자체가 버그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 버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사실 너희가 말하는 것도 마냥 공정하지는 않다" 운운하며 마이클샌델을 전가의 보도로 써먹기 딱 좋죠, 마침 제목부터가 '공정하다는 착각'이겠다.. 한편 진중권같이 공정 담론을 좌파식으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저 책을 즐겨 인용합니다. 물론 모든 인용자가 그런 저의를 가졌단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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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당초 샌델의 담론은 미국만큼 능력주의가 제대로 스며든 나라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깔아놓은 전제부터가 성립을 안 하니까요. 그리고 미국식 능력주의의 수단은, 노조가 없다시피한 자유시장경제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능력주의 사회가 아니라, 시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시험을 쳐서 얻은 마패(정규직, 철밥통, 전문직, 학벌 등)로 평생 우려먹는 사회죠. 좌파들이 걸고 넘어지는 한국사회 모순도 시험 지대(rent)에 기인하는데, 걷다가 샌델의 공정론을 들이대는 건 잘못된 메스입니다.
이런 현격한 차이는 미국에선 고용주가 해고할 자유가 상당히 보장되어 있고, 전문직의 정원이 널널한 편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 기저에는 앞서 말했듯 이권집단의 정치적 타협이 아닌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맡긴다는 오랜 관념, 즉 시장자유주의가 있고요. 반면 한국은 압축성장 자체를 관 주도로 해왔고 시장의 역사가 짧으니 이런 관념이 스며들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종 고시합격 타이틀이 세상 위에 군림하는 수준이었고, 취직 후의 실적보다도 취직 전에 스펙 쌓아서 어느 직장에 들어가느냐가 삶을 지배하죠. 요컨대 허울이 본질을 뒤덮는 나라였고, 지금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그 허울을 꿰차서 이후에 꿀 빨려고 쎄빠지게 공부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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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국내 대기업 인사 프로세스가 기형적인 것도 낮은 고용유연성에 기인합니다. 주요기업은 해고가 힘드니 한 번 채용할 때 비용을 많이 들이게 되고, 해고가 힘들면 취준경쟁도 과열됩니다. 한편 한번 뽑은 직원이 금방 나가버리면 안되니까 1~3년차엔 제대로된 일을 안 시키고 놀려둡니다. 그렇게 직원들은 연차만 쌓이다가 바보가 되고, 이직을 할 수 없는 커리어와 나이가 되면 그제서야 직원을 굴립니다. 그렇게 대기업과 직원은 강력하게 coupling되고, 한국의 직업은 사실상 미국의 job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기업이 자기 인생을 책임지기만을 바라는 전업주부에 가깝습니다. 미국 주요일자리 종사자들은 주기적으로 이직을 하며, 기업과 자기 커리어를 분리하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마련이죠.
게다가 노동경직성으로 인해 취준이 기형적으로 과열되니 사회진출 연령이 늦춰지고, 이는 결혼/출산 감소로 이어지는 요인1입니다. 최근에 윤석열이 만난 노동전문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윤석열이 2019년 7월에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당시 '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를 존경한다고 한 걸로 미루어보아 ,집권한다면 대기업노조/공공노조의 힘을 빼지 않을까 희망회로 돌려봅니다. 그가 최근에 말했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부디 기득권노조 무력화를 의미하기를, 출산율 박살난 나라의 반등을 위해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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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시험 지대(rent)에 집착하는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파동입니다. 일단 비정규직 출신이 공채 출신에 비하면 업무능력이 딸릴 게 뻔하고, 이는 차등의 명분이 됩니다. 그러나 정규직들은 핀트를 이상하게 잡았죠. "우리는 힘들여 공채로 들어왔는데 왜 비정규직에 대가없는 특혜를 주냐" "노력의 가치를 알아달라". 노력으로 치면 허공에다 삽질하는 것도 노력이고 던파 만렙 찍는 것도 노력입니다. 생산한 가치의 양에 비례한 보상을 주는 게 능력주의의 시작이고, 이 이후에야 공정을 논할 수 있는데, 한국은 능력이 아닌 고생과 노력으로 감성팔이하고 자빠졌으니 첫 단추부터가 글러먹었죠. 능력의 잣대로 평가하면 공공부문에서 지금같은 대우 받고 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1%도 안됩니다. 임금을 삭감하여 민간과 밸런스를 맞추거나 죄다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게 진짜 능력주의적인 해법이죠. 평상시에 자기 업무가 실체 없느니 월급루팡이니 토로하던 사람들도, 이런 말을 들으면 발끈하지요.
한편 앞에 말한 고시류 시험에 대한 병적인 집착도 마찬가집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타이틀만이 실력이고 로스쿨이나 특채는 반칙 비슷하다는 게 진짜로 웃기는 소리죠. 진짜 가치생산으로 평가를 받으려면 오히려 시험의 과열을 줄이고 영미처럼 정원을 늘려서 시장에서 결판짓게 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비슷한 제도로 단박에 결착을 지어서 승리자는 낮은 정원의 수혜를 누리는 건, 지대추구일 뿐 능력주의와 거리가 멀죠. 경쟁시장을 부정하는 우파 조무사들이, 공정이니 시장주의니 신분상승의 사다리니 떠들어대는 게 작금의 현실이지만. 아, 혹시나 해서 덧붙이건대 간호사 등 라이센스의 권위는 존중하니까 사용한 멸칭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강한 관성을 가지기 때문에, 바꿔보려고 하면 강한 반동에 시달리게 마련입니다. 이런 구조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노력하던 사람들이 보상심리가 생겨서,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강한 보상심리를 가지고 시험=공정=능력주의 를 떠드는 커뮤니티가, 보람이가 유튜브 앞에서 짜왕을 맛있게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가는 '능력'에 부들부들거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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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정담론을 비판하려면 애먼 마이클샌델을 끌고올 게 아니라, 허울이 본질과 전도되는 한국만의 현상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건 정밀타격을 할 안목이 없기 때문이죠. 진중권이가 "우파는 정밀타격을 할 줄 모르고 원색적인 색깔론만 가져온다"라고 자주 말하는데, 반대쪽도 거울마냥 닮아있나 봅니다. 진중권 본인도 포함해서. 시장이나 유인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럴 능력이 있으면 오히려 신기한 일입니다.
반면에 자칭 공정주의자들도 자강두천 합니다. 좀더 확장성 있는 구호를 내려면 자기들이 원하는 구조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경쟁구조는 비생산적인데다가, 어릴 때 공부 못하던 사람은 그냥 평생 2류 3류로 살라고 요구할뿐이죠. 어려운 시험 관문으로 자기들만의 '지대' 온실을 만들어놓고, 이게 실력의 격차이니 쿨하게 승복하라는 으름장에 납득하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나아가 한국 일부 우파의 문제는 현 구조에 대한 고민을 거치지 않고, 그저 현재 돈 많이 벌고 쎈놈이 사회적 역할도 크기 때문에 고마운 줄 알라는 식의 쿨병을 떤다는 점이죠. 아무리 영향력이 큰들 사익이 후생 증대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음의 외부효과를 과하게 내면 별 쓸모 없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예시처럼 한국사회에서 우상화된 '시험형 엘리트'는 제 기준에선 마뜩찮네요.
게다가 허울을 얻을 수 있는 쿼터가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 허울을 좇아 어려서부터 책상머리 사교육 뺑뺑이 돌리는 애들이, 보상심리에 의한 기대치와 현실의 간극에 절망하는 정도도 커져왔습니다. 한국이 사회전반적인 스트레스가 높고 젊은이들이 결혼/출산 포기를 포기하는 것도 본말전도된 유인보상구조와 결부할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퀴렐은 금과 영생만 탐했기 때문에 소망의 거울에서 돌을 못꺼냈지만, 해리는 순수한 가치를 원했기 때문에 꺼낼 수 있었습니다. 온실 속에 들어가기 위해 쓸모없는 시험에 매몰되는 사회가 아니라, 큰 가치를 내기 위해 정진하는 사회가 훨씬 바람직합니다. 진짜 능력주의를 입에 담으려면 그 수단이 될 수 있는 고용유연화와 open-rule 필드를 지향해야 합니다. 자유시장경제라는 전제도 안 갖춘 한국이 샌델 류의 정의론을 논하기엔 10년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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