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의사 정원을 확대하면 예상되는 병폐(2022.01.)

 24개월 전에 사법시험 신봉자들을 마구 짓이기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의 주석1에서 방송통신로스쿨 공약에 매우 찬동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사실 본인이 로스쿨 이해당사자가 아님을 선제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사일 뿐입니다. 만약 하이에크 주장에 따라 의사나 법조인을 운전면허 수준으로 격하한다면 심각한 사회적 폐단이 생길 겁니다. 후술하건대 이미 미국 의료소송 남발에 의한 시장 실패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고,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을 긍정하는 입장에서도 경계할 부분입니다.

십수년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어떤 건축가의 업무 일상을 보여주는 방송을 했습니다. 그때 그 건축가가 말하기를 "의사와 법조인은 안좋은 일이 있는 사람만 만난다. 반면에 집을 알아보러 오는 사람은 대개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답니다. 그 멘트를 전해들었을 당시에는 그냥 전형적인 관점 비틀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곱씹을수록 시사점이 있는 발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의료와 법조계는 다른 민간부문과 달리 사익 추구와 무한경쟁이 공익과 맞물리지 않는 경우가 숱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실체 없는 마케팅이 수요를 창출하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위험성이 큽니다.

현대에 이르러 의료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 간극이 좁혀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과잉진료 이슈 등에 있어서 의사의 양심과 자정작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수완이 좋은 장사치를 좋은 의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의료 민영화에 상당부분 찬동하는 편이지만, 만약 라이센스와 규제를 풀은 후 진료1회당 건보 부담 비중을 줄인다면 그저 시장적응력 좋은 장사치들이 득세하는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 미국은 변호사가 기초자격증 수준으로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면허란 특정 경쟁시장에서 과점적 지대(rent)를 부여하는 반시장적 요소이지만, 미국 법조 분야가 그와 반대로 시장 개방을 한 결과가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법조인 수를 무분별하게 늘리는 경우 그들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므로, 법조인들이 합심해 입법만능주의를 조장할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한국은 법조인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국회' 집단 정신병에 걸려서 입법만능주의를 조장하는데, 법률은 사람 간 갈등을 적당한 선에서 갈무리짓는 수단에 그쳐야지 자세할수록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요컨대 법률시장의 성장이 사회의 공리에 부합하지 않는 수준까지 이뤄지며 사익과 공익이 충돌합니다.

미국의 민영의료와 자유법률시장의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 의료소송이 남발되고 이 소송에서 오고가는 액수가 매우 큽니다. 그 결과, 병원은 소송 리스크를 미리 반영한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하여 병원비가 매우 비쌉니다. 물론 의료보험에 가입한 시민들은 의료에서 아주 큰 고초를 겪지야 않지만, 미국은 한국같은 사회주의식 의료보험 강제 가입 체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이 가입 여부와 보험료 지불을 책임지는 체제입니다. 누구는 적당한 서민, 중산층 이상이니까 적당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슬럼 이하에 사는 시민들은 의료보험의 보호를 못받는 미국사회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저 두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이익을 좇은 결과가, 다른 사회와 배타적인 신-가치 창출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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