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김앤장 전관예우가 문제 되는 이유(22.5.3.)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라는 말을 한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네거티브 규제는 "안된다고 법률에 명시한 것 외에는 다 허용된다"라는 영국/미국식 규제이고, 포지티브 규제는 된다고 명시한 것 외 아무것도 불허한다는 한국식 규제입니다.
포지티브 규제가 사회에 심각한 해악인 이유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술과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는데, 법률 규제라는 구시대적인 장애물에 발목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법이 민간보다 몇 배는 느리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포지티브 규제가 관료의 권위와 완장질에는 이득이 됩니다. 기업들이 규제에 얽매일수록 공무원에게 아쉬운 소리 해야 할 일이 늘어나고, 공무원은 유권해석 혹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통해 사기업을 좌지우지하고 다소 부당한 보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공무원에 대한 감시망과 제재를 강화해도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진 못하죠, 규제를 네거티브로 바꾸지 않는 이상.
고위 관료 출신이 은퇴 후 민간기업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게 문제시되는 이유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로, 현역 시절에 그 회사에 특혜를 제공한 대가로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니 그냥 오얏나무 밑에선 갓끈도 다시 묶지 마라는 겁니다. 판검사 전관예우 문제와 비슷한 논리입니다.
둘째로, 룰이 엄격한 나라에서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게 문제가 됩니다. 고위공무원으로 오래 일한 사람일테니 어떻게 해야 행정/사법적 규칙 내에서 유리하게 놀 수 있는지 알기 수월합니다. 룰을 편리하게 이용하든, 전직 공무원 동료에게 찾아가든. 김앤장같이 커다란 회사에서 전관을 데려가려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문제는 전직 관료들이 이렇게 거액의 대가를 챙기는 게 시장경제의 근본 의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장경제의 대의는 사익 추구가 궁극적으로 극대화된 공리를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공무원이 완장과 몽둥이를 쥐고 있는 덕에 은퇴 후에도 배타적인 '지대추구적 능력'을 쥐고 있는 걸 건강한 시장적 능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들만의 지대 수취일 뿐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두번째에서 파생됩니다. 전직 관료가 전관예우를 누린 후에 임명직 고위관료로 무사히 임명되는 게 사회 전반, 그리고 공직 기강에 해로운 signal을 보냅니다. 전관예우가 도덕적, 도의적으로 묵인되어버리면 너도나도 은퇴 후에 지대를 한탕 해먹자는 인식이 어느 정도 강해질 거고, 이는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규제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듭니다. 선출 정치인이 지시를 해도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따르지를 않을테니까요.
* 다소 여담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김동연 후보가 행정고시를 날려버리자고 주장한 배경도 이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거북한 악마화일 수 있지만,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고시 출신은 기본적으로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NPC라는 자각이 없고, 관료가 시장을 적극적으로 쥐락펴락해야 사회가 정의롭고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뒤틀린 강박이 전반적으로 존재합니다. 뒤틀린 공명심은 권한을 놓기 싫게 만들고, 네거티브 규제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듭니다. 관련 한국경제 칼럼을 아래 첨부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664589?sid=105
이 대목에서 사법시험을 연상할 수도 있을텐데, 맞습니다. 사법시험과 서울법대를 박살낸 게 민주화 이후 최대 혁신입니다. 만약 저런 변화를 거치지 않았다? 한국은 아직도 안철수 등의 기업가가 아니라 고승덕이나 빨아대는 시험 정신병 국가였을 겁니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위주로 짚지 않고, 후보자의 치부와 가십거리 그리고 대중이 느낄 직접적인 박탈감 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게 큰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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