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봄 후기 feat. 국제시장, IMF, 아수라

 서울의봄 후기 feat. 국제시장, IMF, 아수라


며칠 전에 서울의봄을 관람하니 대부분의 고증이 잘되어 있는 점에 감탄했다. 건국 이래로 장교 인사 적체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불만을 품은 후배 기수들이 쿠데타를 두 차례 일으켰다는 점도 황정민 대사에 잘 녹아 있었다. 다만 정우성이 대교에서 단신으로 탱크를 돌려세우는 장면은 실제로는 반란군 측 김진영 대령이 진압군 측인 수경사의 전차부대를 돌려세운 일화를 뒤집어서 각색한 것 같
다.


나는 현대사의 자세한 전말을 군대 전역할 나이에야 알았다. 한국사시간에 12.12쿠데타 6.29선언 이런 키워드만 대충 주입하는 것과 자세한 전말을 파악하는 것 간 차이가 큼을 체감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영화들이 뜻깊다고 생각한다. 수 년 전 국제시장을 상영할 때 일각에서 생트집을 잡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반응이 아주 갈리지도 않는 것 같다. 다만 국제시장 때 왜 그따위 반응이 나왔는지는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시곗바늘을 잠시 돌려서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얘기를 비전공자 수준에서 풀어보려 한다.
김영삼이 집권 후 "한국 경제는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라는 어록을 남기며 OECD 가입을 강행했고, 이러한 시장 자유화는 개발도상국과 해외 자본의 저리 단기채 사이의 장벽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한국의 고성장 불패신화에 취해 있던 대우그룹 등등은 무분별한 몸집 불리기식 투자와 천문학적인 분식회계를 일삼았고, 아마 값싼 외채가 들어왔으니 물 만난 고기마냥 하던 짓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국 경제의 성장성에 대한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떨어지기에 이른다.

어느 국가의 기업들이 잘나가면 통화가치가 올라서 무역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낮아지고, 기업들이 못나가면 통화가치가 내려가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동시에 값싼 환율을 틈탄 해외 투자자본이 유치되는 음성피드백 루프가 작동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97년 당시까지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다는 게 불연속적인 해외자본 돈맥경화가 발생하여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원인이었다. 불연속적으로 박살이 난 국내 기업들이 일부는 이헌재의 칼질에 따라 그대로 부도가 나는가 하면 또다른 일부는 해외 자본의 구제를 받으며 헐값에 지분을 넘겼다.

요컨대 외환, 그 중에서도 기축통화가 들어오지 않아서 경제가 일시에 경색되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김영삼 퇴임을 즈음하여 만약 일본이 원화-엔화 스와프를 해줬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거라는 사설을 냈다. 당시 일본은 인플레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국 통화를 찍어내서 퍼주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이 OECD 가입 외에도 임기 중에 벌인 짓이 하나 더 있다. 일본한테 기어올랐다는 것이다. 당시에 일본이 외교적으로 시비를 걸어서 김영삼이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라고 대응한 사실은 많이들 전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영삼은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폭파가 아니라 철거다)하며 도발 수위를 높였다.

대뜸 김영삼 비판으로 길게 운을 뗀 이유는 한국사회가 도덕주의 정서가 지배한 나머지, 계층/이익집단 간 대립같이 선악의 영역을 벗어난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능력이 결여됨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현 사회분위기에서 페미를 욕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행위이고 문재앙 시절 페미를 지지하고 보수를 일베로 몰아세우는 데 딱히 두려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때그때 시류에 편승하여 도덕적 우위를 즐기는 쥐새끼같은 처세를 하고 싶지 않다. 이해의 대립을 마치 선악의 문제인 양 다년간 몰아세우다가 나라가 두쪽이 나지 않았나.

첨부한 여론조사에서 사회 곳곳에 반목과 증오를 퍼뜨린 자와 나라를 말아먹은 자가 나란히 중상위권을 차지한 걸 보고 씁쓸해서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도덕주의가 지나친 나머지 사실과 가치의 분리도 잘하지 못하기가 허다하다. 가령 전두환 노태우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국정운영에 있어 일말의 유능함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시기에 나라가 잘된 것은 죄다 대외적 요인이 좋았거나 임명직인 김재익 오명 김종인 덕분이며, 하나회를 청산한 김영삼은 폭탄돌리기의 불운한 희생양이며, 한국에 IT가 잘 자리잡은 것에 오명이나 특히 전두환의 기여는 절대 없고 오로지 김대중이 인프라 잘 깔은 덕이라는 식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최대 개혁인 사법시험 폐지를 정작 여론조사 1위 노빠들도 제대로 내세우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방금 언급한 김종인은 노태우 정부에서 건강보험 등 무거운 정책에 관여했는데, 김영삼이 92년 총선 때 민주자유당(3당합당)을 장악하면서 민정계 정적인 김종인을 감옥에 보냈다. 이때 칼잡이가 모래시계 홍준표 검사였다. 나는 이것이 김영삼 정권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6.25 전후 남한은 총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미국에게 받으며 관 주도로 그 지원금을 사용하여 성장했다. 한일병합 상태에 있다가 연합국이 해방시킨 해방된 직후 총력전을 겪은 남한에서 그 '관'이라는 것을 이끌 엘리트는 기껏해야 일제 관료 아니면 장교 출신 엘리트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군부가 20세기 한국을 발전시키기에 어느 정도 적합했던 건 녹화사업에 성공한 유일한 개도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무를 베어다 연료로 쓰던 한국에서 군부 정권은 석탄발전소를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무단벌목을 안 하게끔 nudging했다. 당시 녹화사업을 지원하던 해외 기구들은 왜 나무 심을 돈으로 발전소를 짓냐며 항의했다.

반면 야당은 박정희 쿠데타부터 87년도까지 강대한 정권에 장기간 대항하기 위해 김영삼, 김대중을 보스로 하여 단결할 수밖에 없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위계질서에 따라 보스들 중 누군가가 집권하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불행하게도 김영삼은 DJ처럼 사업을 해본 것도 아니거니와 서울대 입학도 가뜩이나 위상이 낮은 시절 뒷구멍으로 기어들어갔고 평생 국정운영에 얼씬도 못해본 원조 운동권 무식꾼이기 때문에 국정을 운영할 혜안이 없었다. 그가 집권하고 나서도 자기처럼 투쟁 말고는 뭘 제대로 해본 경력도 없는 부하들에게 보은을 해야 했고, 비능력주의적인 논공행상이 불가피하니 군부가 통치할 때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영삼이 지방대 난립을 무분별하게 허용해서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현재 지방대들은 지방 상권/표심 때문에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 채 세금 빨아먹는 기생충이 되어 있다. 김영삼은 대국민 연설에서 '관광문화'를 '강간문화'로 발음하는 등 무식을 여념 없이 드러내서 당시 '영삼이는 못말려'라는 풍자 만화에 수록되었다.

서울의봄 상영하고 나서 김영삼을 하나회 쳐냈도르로 재평가하려는 기사들이 나던데, 윤석열이가 '기축통화국' 이재명의 집권을 막았으니까 마냥 옹호해도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작품 도입부에 '그러나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한국사회는 더 짙은 어둠을 맞이하게 되었다'라는 자막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저런 헤게모니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역사가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영역이 아니라 제도권 진영들과 국민들의 합의 사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당합당 입장에서 정통성이 없고 큰 죄를 지은 신군부를 굳이 적극적으로 옹호할 이유가 없고, 당내 민주화의 심볼인 김영삼을 깎아내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한편 민주당 역시 한때 민주화 동지였던 김영삼을 인정할 유인이 크다.

서울의봄 감독이 아수라를 제작한 감독이라는 사실 또한 웃기는 지점이다. 17~19년도에 친문이 이재명을 담그기 위해 아수라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아수라나 서울의봄같은 영화를 보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계층이 바로 정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20대 대학생들이다. 지금 대학가에서 이재명은 지지정당과 무관하게 조롱거리로 여겨지고, 심지어 중앙대생들도 이재명과 엮이기는 껄끄러워함을 내가 오프라인에서 목격했다. 도덕주의로 점철된 한국사회에서 누구 지지한다고 선뜻 얘기할 수 있고 없고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아마 감독은 아수라를 만든 걸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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